저 말입니까?  

 


 

 


 

 

작성자 박원호
작성일 2013-12-05 (목)
ㆍ조회: 1161   
박하의 시대풍류#53 - 사랑도 낙법(落法)부터!!!
스키의 계절이 돌아왔다. 추울수록 스키장은 호황을 누린다. 하지만 내겐 그림의 떡이다. 내가 아무리 모험심이 끓어 넘쳐도 막무가내로 말리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하지만 내 친구 하나는 스키광이다. 내년이 환갑인데도 나이를 잊고 스키장으로 달려가곤 한다(부부가 한 통속이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 스피드의 쾌감이 음양 합궁의 쾌감보다 더 짜릿하대나 뭐래나.........
 
일전에 친구가 들려준 스키 체험담이다. 초보 강습을 받을 때, 일곱 살짜리 꼬마도 있었단다. 이 꼬맹이가 어찌나 빨리 배우는지 어른 체면을 확 구겼다는 얘기였다. 도대체 무슨 까닭이냐고 했더니, 꼬마 녀석이 넘어지는 걸 겁내지 않더란다. 이와 달리, 나잇살도 무색하게 뱃가죽에 군살 하나 없이 날렵한 내 친구는 처음에는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속절없이 벌어지는 가랑이가 찢어질까봐 얼마나 용을 써댔는지........ 용을 쓰면 쓸수록 더 크게 자빠졌다고 한다. 말인즉슨, 넘어지기를 제대로 익힌 연후에야 스키 실력이 일취월장하더란다.
자전거나 오토바이 배우기도 비슷하다. 처음 배울 때는 무시로 넘어진다. 넘어지되 가급적 다치지 않도록 말이다. 맨 처음 자전거로, 맨 처음 오토바이로 단독 출격을 했을 때의 그 감동이라니! 마치 내 어깨에 날개가 돋아난 느낌이었다. 무한 자유! 그 자체였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내 무르팍이나 손바닥은 한 동안 피딱지가 떠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알고 보면 모든 스포츠가 그렇다. 넘어지는 것부터 배운다. 유도 선수도 맨 처음 낙법(落法)부터 배운다. 축구 선수도 럭비 선수도 마찬가지다. 쓰러지는 것이 기술이다. 몸을 공처럼 빙그르르 굴려야 한다. 그래야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난다. 잘못 넘어졌다가는 골절상을 당해 평생 불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가장 먼저 넘어지는 기술을 터득해야만 한다. 하지만 축구경기, 야구경기에 열광하는 팬들은 자칫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들은 남이 넘어지는 것은 깔깔대며 즐기지만, 정작 자신들은 제대로 된 낙법을 모르기 십상이다.

한편으로 요즘 젊은이들은 매사에 참을성이 모자란다고 한다. 왜 그럴까? 참을성이란 그저 생기는 게 아니다. 온몸으로 수차례 넘어지기(좌절)를 겪은 뒤에야 생긴다. 상처에 딱지처럼, 철봉을 오래하면 손바닥에 못이 박히는 것처럼 그렇게 생기는 것이 바로 참을성이다. 알고 보면 지혜도 충동적이 아닌 참을성의 산물이다.

 
문호 괴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가난한 청년 괴테가 법원 서기였던 시절, 우연한 기회에 딸 부잣집의 장녀 샤롯데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의 집은 자기보다 더 가난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뱅이 청년 괴테보다는 현직 변호사에게 딸을 시집보내기로 결정하고 만다. 롯데도 잠시 울고불고 했지만 큰딸로서 이내 아버지의 결정을 존중한다. 괴테는 실망한 나머지 권총 자살을 결심하고서 자신의 실연 과정의 전말을 자전적 소설로 쓴다. 바로 불후의 명작이 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이 소설은 괴테를 일약 유명 작가로 만들어주었다. 한편으론 ‘베르테르 효과’라고 하여 모방 자살도 꼬리를 물었다. 어쨌든 괴테는 청춘의 참담한 실패를 밑천으로 일약 인생 최대의 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알고 보면 괴테는 세계 최고의 작가 겸 연애 고수였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74세에도 19살 소녀에게 청혼을 했을 정도니 말이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원조교제의 색마(色魔)라며 벌써 매장되고 말았을 것이지만.)
 
청춘사업에도 인생 경영에도 넘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낙법(落法)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그 수련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가 좋다. 그래야 멋진 사랑, 멋진 인생을 누릴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피 끓는 청춘들이여, 한순간 크게 넘어졌다고 난리 브루스를 추지 마라! 실연 한 번에 마치 인생이 끝난 것처럼 굴지도 마라! 연애도 사업도 크게 넘어지는 일이 곧 제대로 낙법을 배우는 일이다. 젊은 그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글/ 박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