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말입니까?  

 


 

 


 

 

작성자 박원호
작성일 2014-03-03 (월)
ㆍ조회: 1128   
박하의 시대풍류#54 - 시베리아가 그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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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의 시대풍류#54 - 시베리아가 그리운 이유
2013년 12월 19일 (목) 09:09:06부울경뉴스 webmaster@bulgungnews.com
  
박하 시인
세월에도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다. 바야흐로 올해도 12월 중순, 세월의 굵은 마디 앞에 마주섰다. 필자가 ‘박하의 시대풍류’ 칼럼을 써온 지 어느덧 2년, 이번 호로 마감을 한다. 격주로 어김없이 칼럼 1 편, 깜냥도 안 되는 내겐 아주 벅찬 일이었다. 처음 한동안은 부대꼈지만, 이내 익숙해졌고 그 덕에 얻은 것도 적지 않다.
우선 내 우둔한 글쓰기에도 순발력이 생겼다. 명색이 ‘시대풍류’인데 한가로운 추억담은 아닐 것이다. 하여 사회적 이슈 때마다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줄었다. 둘째, 세상사에 대해 좀더 분석적이 된 것 같다. 글쓰기란 일종의 ‘낯설게 하기’이다. 고정관념을 뒤집어야 글이 신선해진다. 또한 ‘생각은 글로벌(global), 행동은 로컬(local)'이라는 말처럼 내 고장에 좀더 애착을 갖게 되었다. 셋째, 입장을 바꿔 생각하기(易地思之)이다. 어느 분이 그러셨다. 만 사람이 그 놈 죽일 놈이라 해도, ‘아니야,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거야!’ 하고 말이다.
묵은해가 저물어가자 때 아닌 산들바람이 분다. 필자에게 그 바람의 진원지는 저 멀리 시베리아’이다. 그곳은 ‘겨울의 심장’이라고도 부르지만, 한때 유형의 땅이기도 했다. 제정(帝政) 러시아와 냉전시대 러시아연방 당시의 시베리아는 정치범들을 격리 수용시키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희망의 땅으로 변한 지 오래, 광물자원의 보고(寶庫)로 글로벌 개발업체들이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시베리아 여행을 꿈꿔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타이가(taiga), 빛나는 자작나무 열병식을 지나 바이칼호수에 닿고 싶다. ‘이르쿠츠크’라는 도시에도 꼭 들르고 싶다. 마차로 설원(雪原)을 누비던 닥터 지바고의 낭만 때문도 아니고, 도스토예프스키나 솔제니친의 이야기 때문도 아니다. 그곳은 내 아버지(朴圭用)가 스무 살(1945~)부터 꼬박 3년 동안 강제노역을 당했던 곳이다. 내력은 이렇다.
태평양전쟁 말기 1945년 7월 말경, 20대 초반의 시골 청년 우리 아버지는 일제하 징병을 나가셨다. 관동군 소속으로 사할린에 배치된 뒤, 한 달 만에 러시아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 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실려 속절없이 팽개쳐진 설원, 이르쿠츠크였다고 한다. 당시 갓 스물의 아버지는 포로수용소에서 꼬박 3년 동안 벌목작업을 하셨다고 한다. 복장은 넝마 같은 염소 가죽을 걸치고, 식사는 끼니마다 검은 빵 한 조각으로 때웠다고 한다. 또한 날씨는 얼마나 추웠던지 오줌을 누면, 오줌발이 거꾸로 고드름처럼 뾰족탑을 이루었다고 한다.
젊을 때는 아버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점도 많았다. 자식들에게도 잔정이 없다고, 어머니는 늘 잔소리를 하셨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제 인생 제가 살아야지 무슨.......’ 이런 식이었다. 아버지는 3년 전에 고인(故人)이 되셨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들이 남은 기분이다. 일테면, 시베리아에서 구사일생으로 생환할 수 있었던 지혜, 육이오 전쟁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전투경찰로서 덕유산 공비 잔당 토벌까지 감행했던 일, 고비 고비 숱한 인생유전을 겪으며 팔십육(86) 세까지 장수하신 일, 그만하면 훌륭한 인생 경영이 아니겠는가.
시베리아에서 아버지는 전혀 용감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거대한 빙설(氷雪)의 감옥 시베리아, 아버지는 숱한 탈출의 기회도 마다하고, 고비마다 잘난 체 나서지도 않고, 기어이 살아 돌아가겠다고, 살아 돌아가 그리운 어머니 품에 안기겠다는 일념! 그래서 ‘은자(隱者)’ 같이 늘 낮게, 낮게 엎드려 지내셨다고 한다. ‘큰 기교는 졸렬하게 보인다(大巧若拙)’,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노자(老子)의 말이 떠오른다.
시베리아 여행길은 아버지의 넋을 기리는 길이고, 굴라그(gulag) 군도 같은 유형(流刑)의 땅에서 불굴의 생존 지혜를 상상해보는 길이도 하다. 또한 극한의 환경에서 장장 9천 km의 철도를 건설했던 인간 승리를 확인하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시베리아로 가고 싶다.
*그동안 ‘박하의 시대풍류’를 성원해 주신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부울경뉴스>의 일취월장! 발전을 기원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whpark55@hanmail.net)
글/박하 시인